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기억하시나요?
박근혜 시절 국무총리를 했던 이완구는
충천권의 대표 대선 주자였었습니다.
그 이완구가 향년 71세의 나이로
별세한 소식입니다.
원인
2012년 혈액암 일종인 다발성골수증으로
투병하다 골수 이익을 받았으나, 다시
암이 재발하여 14일 별세하게 되었습니다.
이완구란?
이완구는 충청도에서 태어나
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재학 중
행정고시를 합격하여, 충남 홍성군청
사무관으로 공직의 커리어를 시작하였습니다.
그 후 그의 나이 31세에 최연소 경찰서장이
되면서 홍성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.
그 후 그의 커리어는 계속해서 승승장구 하게
되는데요.
경찰서장을 시작으로 최연소 경무관,
로스앤젤레스 주재 총영사관 내무영사,
40대 초엔 이미 2급 공무원 상당인
치안감까지 올라 충북지방경찰청장,
충남지방경찰청장까지 올라갔습니다.
이런 엘리트적인 커리어때문에 정치계에선
이완구를 탐낼 수 밖에 없었는데요.
지속적인 정치계의 러브콜로 인해 이완구는
1995년 국민의 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
민자당에 입당하게 되었습니다.
입당 후 15대,16대 국회에서 재선되었으며
2006년 충남지사로 당선되었습니다.
2009년 이병박 정부에서 세종시 수정안을
추진하자 이완구는
"충남도민의 소망을 지켜내지 못했기에
정치적 책임을 지겠다."며
충남지사의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.
이 이후로 충청권에서는 엄청난 인기를
얻었고 이로 인해 박근혜와 더 가까워 질
수 있었습니다.
그 후 건강상과 개인적인 이유로 계속해서
정치활동을 순조롭게 하지 못하다가
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국무총리의
자리에 오르게 됩니다.
그러나 그 후 '성완종 리스트'파문이 터지면서
재임한지 70일만에 최단기로 불명예 퇴진을
하게 됩니다.
이 후 이완구는 정치계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.
성완종리스트
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명을 달리
하기 전 자신의 품속에 있던 '정치권 금품 제공 메모'
라는 종이에 이완구의 이름이 있었으며,
성완종이 살아생전 인터뷰에서 이완구에게
3천만원을 준 적이 있다고 주장했었던 사건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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